[2014.08.12]조원준

2014.08.13 00:57

최한철 조회 수:216

원준이와 언쟁이 오갔다. 언쟁이라기보단 내가 혼쭐이 났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재원 확보가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그렇게 시기상조로 재단을 추진하는지, 금융에서 충분히 대가가 된 연후에 해도 될 것인데 공명심에서 서두르고 명분을 급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내 인생을 커밋하고 있는 것에 대해 왜 그리 함부로 말하느냐라고 하자, 내가 불쾌하다면 그건 내가 속이 좁은 것이거나 찔리는 게 있는 것이지, 날 유쾌하게 해주기 위해 직언을 해 줘야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나는 그 대화 끝에 감명을 받았다. 그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렇게 내 감정에 대한 일말의 고려없이 내 치부를 드러내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모로 깨닫는 바가 있었다.

몇 주 전에 지난 수년 간의 재정 상태 정산을 끝냈다. 지난 4-5년간 사이프러스라던가 외환 거래라던가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투자하고 사업이랍시고 해서 날린 돈이 3억 5천에 달했고, 사기 아닌 사기 당한 것이 6000만원 가량에 달했다. 거기에 각종 빚에 이자까지 더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지 않은 돈을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 그 재원은 시카고에서 트레이더로서 번 돈, 투자받은 돈, 개인 채권을 발행한 돈, 카드빚, 은행빚 등으로 충당했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서른이란 의미없는 숫자에 불과한데도, 그 때까지 뭔가 많이 이뤄 놓아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왜 그렇게 쫓겼을까. 이미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이것저것 벌이지만 않았어도 차분히 많은 걸 쌓아갈 수 있었을텐데 무엇이 날 그렇게 벼랑끝으로 내몰았을까. 원준이의 말에 속이 쓰라렸던 것은 필시 그를 향한 것이 아닌, 마음 급했던 나의 이십대 중후반을 향한 자괴감이었을 것이다.

그 후 밤새 이것저것 고치고 계획 초안을 손 봤다. 원준이와 나 사이에 이견이 생기고 언쟁이 생기는 상황이라면, 99% 그가 옳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심지가 굳고 강직하고 무엇보다 무게 중심이 언제나 바로 잡혀 있어 치우치는 법이 없다. 반면 나는 욕망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리고, 사람에 흔들린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언제나 그의 객관적인 조언이 필요한 것이고, 가장 존중하는 친구인 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계획이라면 밀어붙여선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가끔 원준이와 이야기하고 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또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입에 발린 소리만 하며 사는지 깨닫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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