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02]순응

2014.09.03 02:28

최한철 조회 수:184

1.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 때가 있다. 학창 시절에 곤란했던 문제들은 대부분 본인의 노력만으로도 극복 가능했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도 많다. 때로는 그런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은 독이 된다. 그럴 필요가 있을 때는 물 흐르듯 순응하는 것, 최종적인 성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면서도 젊은 나이에 가지기 힘든 태도이다. 나는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순응하기가 싫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포기하기도 싫다. 이러다 언제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순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2.
20대 중반부터 지난 4-5년 간 잃은 수 억의 돈들이 이따금씩 나를 괴롭힌다. 1억 5천 ~ 2억 정도 날렸었고 거기에 이자나 이것저것 하면 2억 조금 넘는 줄 알고만 있었는데, 2010년에 뉴욕에서 사업 시작했다가 망한 것 뿐만 아니라 유럽에 투자해서 사라져 버린 돈들, 그 외 잡다하게 새어나간 것들을 합쳐서 최근에 제대로 기록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세세하게 정산을 해 보니 3억이 넘어갔다. 올해 초 정도에 완전히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무의식 속에서는 극복이 조금 덜 되었나 보다. 이제 그만 그 망령에서 헤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도 말이다. 그럴 때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다. 가끔 그렇게 이유없이 울컥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그 수많은 시도들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던 건지. 왜 그렇게 내가 하고자하는 일마다 어긋나야 했던지. 실패가 아닌, 성공이었다면 지금쯤 8-10억 정도로 재단을 시작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 아니, 그건 바라지도 않으니 그 날려버린 3억만이라도 수중에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 드디어 빚에서 헤어나고 많은 일들을 정리했지만, 앞으로 한동안 또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사고 싶은 것들을 참으며 다시 자금과 생활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 2-3년은 고생해야 된다는 생각. 그렇게 20대 청춘을 떠나보낸다는 생각. 천장만 바라보면 그런 생각들만 머릿 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꾸만 자기암시를 한다. 아니, 하지 않고서는 잠들기가 힘들다. 내가 홀로 되뇌이는 말들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20대의 성공은 독이 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할만큼 가치있다는 걸 이미 여러 번이나 경험했는데, 돈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실패해서 3억이지, 나중에 가서 그랬다면 30억이 될지 300억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 그 돈을 잃은 반면 취직도 되었고 지금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10년, 20년 후에 돌이켜보면 그다지 큰 액수도 아닐 것이다, 따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며 자기 위로를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생각들 중 몇 개나 진실일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어쩌면 저런 생각들 때문에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많은 돈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게 다 경험이고 득이 되겠지, 10년, 20년 후엔 이거 큰 돈이 아닌데 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쉽게 큰 리스크를 지고, 그 지경까지 간 것은 아닐까? 때로는 그런 의구심이 들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생각을 반복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을 감고 그냥 저런 생각들에 위안을 삼아 잠들고는 한다.

3.
어쨌든 과거는 과거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무언가 크게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든 실패가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일 뿐이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실패라 해도 어차피 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최소한 과거로 인해 발목 잡히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이제 큰 시기 하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어 이러한 잡념들은 완전히 떠나 보내지 않으면 아니된다. 사실 이러한 잡념들이 자꾸만 내 머릿 속을 휘감는 이유는 잘 안다. 일종의 단순한 탐욕이다. 현재 나는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고 있고, 집안도 안정되어 부모님 노후 걱정도 한시름 덜었고, 나이도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사람이 앉으면 눕고 싶다고, 빈사 상태로 다 죽어가던 놈이 이제 빚도 다 갚고 살만 해지니 이제는 자꾸만 수중에 쓸 수 있는 돈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재단도 일찍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정녕 내가 꿈만을 바라본다면 1, 2년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닌데도 이렇듯 안달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5년 전 이런 탐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가 바로 숱한 빚이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불나방처럼 안달나는 나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사람이 실패에서 배우는 게 맞는가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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