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2]한계

2014.10.12 14:58

최한철 조회 수:209

우리는 생각보다 실로 많은 한계에 둘러 싸여있다. 태어난 가정의 한계, 태어난 국적과 도시와 사회 환경과 언어의 한계, 타고난 소질과 역량의 한계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 뿐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생리적, 본능적, 심지어는 이성적 한계 또한 우리를 규정짓는다.

나는 학생 시절 영감을 주는 강의나 연설을 들을 때마다 동기 부여가 되고 자극이 되어 설레는 마음에 새로운 결심을 하고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일상 계획을 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번번히 삼일을 가지 못하였다. 결국은 내가 의지력이 부족해서거나 혹은 현실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이나 그러한 환경적인 요인이 여의치 않아서였는데, 과연 그것뿐일까. 의지력이 부족한 것조차 어쩌면 이미 규정지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노력 또한 재능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의지가 강하고 노력을 열심히 하는 이는 흔히 칭송받지만, 좋은 머리와 재주를 타고 나서 큰 노력없이 성적이 좋고 게으른 사람은 흔히 폄하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일 노력을 하는 것 자체도 타고난 재능이라면? 물론 논리적 비약이 있기는 하고, 너무나 허무주의적인 생각이긴 하다. 진실은 그 어느 간극에 있을 것이다. 재능이라도 갈고 닦으면 더 뛰어나게 되듯이, 노력하는 '능력' 또한 갈고 닦으면 더욱더 의지가 강해지고 더 노력하기 쉬워질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의 논리를 따르면 노력하는 능력을 갈고 닦게 노력하게 되는 것조차 이미 규정지어져 있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변화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올 수밖에 없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고생을 통해 성숙해져 봐야하므로, 누가 젊어 고생이라는 값진 경험을 하느냐는 결국은 운에 달린 것이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찌되었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 처음부터 확정되는 것인지 갈고 닦을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애초에 시작점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그 또한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한계다.

의식이 있고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못하다. 이성이라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금수와 구분짓게 하는 그 잣대는 어느 정도 과대포장된 면이 있다. 이성은 어디까지나 본능이 고등화되고 발전된 것일 뿐이다. 동물에게 본능은 종의 번영과 진화를 두 갈래 면에서 달성해 준다. 공포나 고통을 통한 생존 본능으로 개체의 생존력을 유지하는 한편, 생식 욕구의 디자인 - 조금 더 뛰어난 수컷이 더 많은 암컷에게 유전자를 전파하는 한편 암컷은 최고의 유전자를 찾게 해놓은 - 으로는 진화를 이룬다. 이성이란 조금 더 많아지는 외부적 변수를 더 계산하게 진화한 본능에 불과하며, 결국은 종의 존속 및 진화라는 목적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일 뿐이다. 각종 학문의 발달과 의학 및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생존성을 높이고, 교육 제도나 사회와 가정의 구축을 통해 번영한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을 통해 여자들은 돈이 많은 남자를 찾지만, 사실은 이는 본능의 발현이다. 금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능력의 가늠 척도가 되었다면, 과거에는 사회적 지위나 무력이 그 잣대가 되었다. 유일하게 본능에 역행하게 발달된 것이 남성의 성생활로, 유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제도인 일부다처에서 일부일처로 이행해왔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종 전체의 진화는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할 여지도 있다.

이러한 고등한 본능의 가이드라인 내에서 우리의 삶은 어느 정도 확정적으로 흘러간다. 흔히 사람에게 있어서의 한계라고 할 때는 앞서 말한 사회적, 환경적 요인, 즉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국가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만 주로 다룬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직면하는 가장 주된 한계는 바로 본능과 진화된 본능인 이성에게서 오는 한계다. 전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은 사회 내에서 많은 격려와 칭송을 받지만 전체적인 종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단지 다른 개체가 있을 자리를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 후자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유전자의 역사라는 크나큰 흐름 속에 방관자로서, 동물화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경우 주어진 운명에 대해 기댈 수 있는 것은 외부적 변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동물화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성적인 생각이 아닌, 이를 초월한 또 하나의 자아를 생성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에 대해 이성이라는 잣대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적인 판단에 대해 또 하나의 초월적인 잣대로 이를 고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이성을 통해 결론 내린 것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본인을 타자화시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의 허무주의적인 논리에 따르면 그 타자화시킨 본인의 이성을 판단하는 또 다른 본인의 생각 또한 앞서 말한 한계로 인해 규정지어져 결국에는 무한 반복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이를 계속하여 해야만이 우리는 신의 영역으로 언젠가 갈 수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에 신의 영역이라 하니 사이비 교주가 된 느낌이 든다.
오늘 갑자기 뭔 개소리를 써 놓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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