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2]두리안

2014.10.12 15:22

최한철 조회 수:248

동남아에서 나는 두리안이라는 과일은 과일의 왕으로 불리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리안의 껍질에서 나는 냄새는 시체썩는 냄새와도 비슷한 정말로 지독한 똥냄새가 나서, 동남아의 공항에는 두리안 금지라는 표지판까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두리안을 먹어본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먹어본 적도 없고 동남아에 가본 적도 없다. 그냥 들은 이야기다)

여기에 대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일의 으뜸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렇게 맛있지만 똥냄새가 나는 과일을 언제부터 사람은 먹게 되었을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런 역한 냄새가 나는 과일은 먹기는 커녕 주위에 접근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두리안이란 과일을 최초에 먹게 된 계기는 그야말로 무작위적인 사고였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숱한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의 어느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 사람이 아사 직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기 위해 먹었다거나, 부서진 과일이 떨어지면서 누군가의 얼굴에 묻게 되었다던가. 현재의 우리들은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맛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역한 냄새를 참고 그것을 갈라 먹지만, 그 맛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두리안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우연, 즉 운이라고 해도 비약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젊어 고생은 정말로 값진 경험이다. 천금을 주고 할 정도로 귀중한 일이다. 자기 입으로 고생했다라고 말하기에 낯간지러운 면도 있고, 분명 나보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아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내 나름대로의 20대의 고생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겪고 배웠다. 그러한 고생을 원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나의 욕망과 계획에 따른 길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거나, 정말 우연한 사고로 울며 겨자먹기로 고생한 적이 많다. KCTC 대항군에 배정되어 눈이 마비된 것도 그렇고, 파병 선발 직전 장막이 터져 급히 수술하고 8개월 내내 간부들 몰래 복대 차고 다녔던 것도 그렇고, 빚잔치는 조금 자초한 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초래했다뿐이지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생을 할지 말지 그게 선택 사항으로 내게 주어졌다면 절대로 고생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일 그러한 고생들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그러한 고생들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컨대 젊어 고생은 실로 두리안인 것이다. 먹기 전에는 너무나 역한 똥냄새가 나서 누구도 감히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먹게 되는 사람은 우연에 의해서일 수밖에 없다. 젊어 고생도 마찬가지다. 젊어 고생은 엄청나게 값진 것이지만 그것을 해 봐야만 그 값짐을 비로소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최초에 하게 되는 고생은 결국 외부적 요인에서 오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운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나간 날들의 쓰라림이 사실은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인지 이제는 깨닫는다. 제아무리 곱씹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신의 선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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