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행복이건 간에. 그리고 나 또한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 어떤 훌륭한 목표를 성취하건, 혹은 그 어떤 지위를 획득하건 간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나는 인생을 올바르게 살지 못한 것이다. 나의 인생계획도 나의 행복추구를 전제로 작성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전에 한번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올바른 삶과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 재확인 해볼 필요성이 있다.

행복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생을 걸고 추구해야할 행복에서 일시적인 쾌락이나 흥미는 일단 배제하도록 하자. 그리고 돈, 명예 등 행복에 부수적인 가산은 해줄 수도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무언가가 결여된 요소들도 제외하자. 사람을 궁극적인 행복으로 이끄는 열쇠는 내가 생각컨대 다섯 가지다. 예술, 학문, 종교, 사랑, 그리고 봉사.

예술적인 추구. 예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또 작업중에 희열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미적인 행복. 물론 나도 취미삼아 악기를 배우거나, 미술을 배움으로써 이런 종류의 행복을 일시적으로 느낄수야 있겠지만 이것은 내 길이 아니다. 예술적인 재능은 어느정도 선천적이라 생각한다. 그 외의 나같은 범인들에게 있어서 예술을 통해 얻는 행복은 부수적인 것일뿐, 절대적인 일생의 행복이 될수가 없다. 재능과 타고난 창의성 없이 예술에 일생을 거는 자에게는 열등과 좌절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불신이 남겨진다. 광염 소나타와 같은 광기로 예술을 추구할 것이 아닌이상, 난 예술을 통해 내가 원하는 행복을 획득할 수는 없다.

학문적인 성취. 일생을 걸어 인간의 지식에 공헌하고 거기에서 크나큰 성취감을 느끼며 일생을 마무리 짓는 삶도 분명히 있다. 이 종류의 행복에 대해서는 길게 거론할 필요도 없다. 나의 몇몇 부분들만 본다해도, 나에게 맞지 않는 삶이다. 내겐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박혀서 무언가를 추구할 끈기도, 그리고 재능도 없다.

종교적인 열정. 종교와 믿음이란 대단히 무서운 것이다. 19세기까지의 가장 잔인하고 대대적이었던 수많은 전쟁들이 종교의 이름아래 행해졌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적이나 성취들은 종교의 힘으로 이룩되었다. 종교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게 그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준다. 비록 현대에 와서 과학의 발달로 종교에 대한 신념이 많이 약화되었긴 하지만, 아직도 종교의 영향은 인간에게 대단하고, 상당한 정신적인 안식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내가 과연 종교로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산전수전 다 겪고 세상경험이 많은 노인이라면 몰라도, 난 아직 젊고, 에너지가 왕성하고 피가 뜨거운 청년이다. 나는 종교에 귀의하여 내 인생의 행복을 찾을 용기나 의지는 없다. 물론 일상 생활하면서 가끔 절에가서 산과 절을 음미하는 행복이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그런 부가적인 행복이 아닌, 내 미래의 인생과 계획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진로를 결정하는 그런 행복이다. 따라서 종교는 될수가 없다.

사랑. 수많은 책들과 정보가 매일같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지만 정작 삶에 대한 근본적인 교훈과 영감을 제공해 주는 것은 고전과 명작들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유명한 작품의 해답은 사랑이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인에 대한 사랑, 배우자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끼고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이란 단어를 가벼이 하거나, 쿨한 듯이 무시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몸가짐을 조심하면서 결혼전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과 나를 평가하고 내게 맞는, 나와 끝까지 행복하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것이다. 동시에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기 위한 몸가짐과 노력도 미리부터 애쓸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내 인생의 일부분은 될 수는 있어도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종교나 예술과는 달리 사랑은 내 인생 계획을 바꿔 놓을 수도 있으며 내 인생에서 크나큰 부분을 차지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나는 사랑만으로는 살수 없다.

봉사. 마더 테레사 수녀는 평생을 종교와 봉사에 바쳐 참된 행복을 얻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봉사는 어쩌면 사랑의 일종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자기중심적인데 반해, 봉사는 그 반대이다.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것은, 실제로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데서 정신적인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욱 크다. 봉사에 전념하여 사는 삶은 분명히 행복한 삶이고 가치있는 삶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봉사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아쉽게도 난 충분히 덕이 있는 인간이 아니다. 봉사란 그 형평을 전제로 한다. 자신에게 소중하거나 사랑한 이에게 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사랑이지 봉사가 아니다. 난 내 것을 희생하여 사랑하는 이에게 줄수는 있어도 전혀 모르는 이에게 바칠만한 숭고함은 내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난 봉사에서 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았고, 따라서 거기에 의거하여 내 인생과 계획을 진행시켜 나갈 생각이다.'라고 말할만큼 대단한 위선가도 아니다. 나는 몸과 가슴으로 절실하게 봉사와 자선을 행해야겠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머리로는 봉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자선을 통한 삶이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줄 것임을 지각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성취욕와 봉사를 이성적인 측면에서 결합시켜야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래와 행복,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도 나지 않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진다. 너무나 변수가 많고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 어렵게 생각할 것없이 매순간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되지만, 가끔은 이렇게 삶과 행복에 관해서 사색해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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