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30]블루문.

2007.07.01 23:13

최한철 조회 수:209

결국 합격한 대학들 중에 뉴욕대를 선택했다. 학부 랭킹은 선택지 중에 제일 낮지만 월스트리트 10분거리에 있어서 인턴십과 취업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스웨스턴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몇몇 분은 내게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치 데자뷰처럼, 고등학교 시절 한국 상위권 대학보다는 실리를 찾아 APU를 선택한 것과 비슷한 사고의 과정을 거쳤다. 우선 내가 대학을 가는 목적은 학문이 아닌 취업을 위함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인턴십과 지리적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뉴욕대의 단점은 학부랭킹이 아직 아이비리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지만 미국에서 취직하려면 필수인 인턴십 경력이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월스트리트 10분 거리라는 지리적 이점을 포기할 수가 없다. 특히 학기 중 인턴이 가능한 곳은 뉴욕대밖에 없다.

게다가 인턴십 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학 자체도 지리적 위치가 대단히 큰 요소가 될 것이라 믿는 구석도 있다. 정보가 점점 힘이 되는 사회에서 정보 접근성이 1초라도 용이한 곳에 있는 것은 경영학도에게 있어 필수적인 사항이고, 다양한 학문이 서로 융합하고 접목되고 있는 추세에서 경영학도가 아니라도 이건 누구에게나 주요한 사항이다. 예전엔 지방 국립대들보다 못하던 서울의 몇몇 대학들이 "인서울"이란 것 하나만으로 랭킹이 수직상승하는 것도, 물론 여러 가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지리적 요건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뉴욕대의 잠재력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코넬이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타카라는 시골에 있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명성보단 실리가 가장 중요하다. 당장 노스웨스턴이나 시카고 같은 랭킹 좋은 학교가면 어깨에 힘은 실리겠지만 대학이 목적이 아닌 수단인 이상 그것이 판단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된다.

물론 취업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영주권도 없고 시민권도 없다. 유학생들 취업률은 10%도 채 안된다. 그 10%중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취업한 사람은 또 그 안의 10%, 전체의 1%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욱더 힘든 길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래도 2년 반 전의 실험, 대구외고 시절 교장 선생님까지 교실로 찾아오셔서 한철아 너 왜 그러느냐 무슨 바람이 불었느냐 후회말고 서울대로 가라, 라고 하시던 일이 아직도 생생한데, 결국 일보후퇴하여 이보 전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맞았다. 한국, 일본, 홍콩, 중국에서 학업과 경험을 쌓고 남은 2년을 미국에서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잘 풀렸다.

인생 가지고 도박하지 말라던 선생님께 떳떳하게 다시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정말로 기뻐야 하는데, 고3때부터 줄곧 계획해오던 대로 되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약간 씁쓸하다.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마음의 그림자만 짙어지는 기분이다.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집 떠난 지 벌써 7년차다. 그래도 장가갈 때까지는 자신의 밥 해먹이고 싶은게 부모님 마음인데, 고등학교마저 기숙사였고, 선물은 아주 가끔했으나 제대로 곁에서 부모님 생신 챙겨드린 적도 드물다.

목표를 잡고 계획을 세워서 철저히 살아가는 삶이 멋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으나, 목표 목표 하다보면 나중엔 목표밖에 안보인다. 지나치게 성공지향적으로 된다. 더군다나 바늘구멍같은 문으로 올라가려고 바둥바둥 거리다보면 남 일은 뒷전이게 되고, 배려심과 여유를 잃게 된다. 본인은 뭔가 거창한 거 있다고 착각하고선 소중한 것들을 망각한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은 소소한 것들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인간관계도 많이 쌓아올렸지만 피상적인 경우가 많다. 메신저에 등록된 친구들만 수백명이 넘지만 정작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10%도 되지 않는다. 10%나 있으니 운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로 크게 성공해서 자선 단체도 만들고 사회를 바꿔 보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다. 그런데 성공은 할거 같은데 내 그릇이 부족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고하지 않아서일까? 스피노자, 장자, 괴테같이 마음의 양식이 되고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서적들에는 손대지 않고, 금융, 주식, 경영같이 표면적이고 '수단'밖에 안되는 서적들밖에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공은 노력하면 다 될거라 믿고 있다. 그런데 인간적인 면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애초에 그릇이 작게 태어난 사람은 그걸 넓히려고 무리하게 노력해봤자 깨질 뿐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직 철이 없는 것일 뿐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고 인간적인 면도 수양을 통해 성장하고 그릇을 넓힐 수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는데, 7년 전과 다름없는 자신의 행동들과 의식수준과 도덕관념을 발견하면 낙담만 할 뿐이다.

외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는 성장했는데 왜 인간성은 성장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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