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9]감정

2008.01.09 00:42

최한철 조회 수:412

자, 이제 몇년간 작별이다. 악수를 하고 멀어져 간다. 상대는 눈물을 글썽이는데 나는 그다지 마음의 동요조차 없이 무덤덤하다. 언젠가 또 볼 것인데 뭐, 떨어져 있어도 연락가능한데 뭐. 어째서 이게 슬픈 일일까?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고 경험해온 풍경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과의 이별이 익숙해져 버렸다.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친구와, 가족과 이별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은 나를 두고 부모님은 씩씩하다고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때때로 야속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단지 내가 떠돌아다니는데 익숙해져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꽤나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여유가 있어서 이라고 거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한 나는 언제나 내가 감정적이 되지 않길 바라는 편이기도 했고, 언제나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했기에 남에게 감정, 특히 슬픔은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꼬박 3년만이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어딘가 마음의 메커니즘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성적이라 샘솟는 감정을 잘 주체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감정 자체가 잘 샘솟지 않는 감정 결핍상태에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슬픔을 느낀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슬픔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슬퍼야할 상황에 대한 슬픔이 아닌, 타인의 슬픔에서 투영되어오는 슬픔이 전부였다. 이별을 할때 상대와 앞으로 오랜기간 못본다는 사실이 슬프다기보다는, 상대가 그 사실에 슬퍼하고 눈물흘리는 것을 바라보며 그가 아파함에 나는 슬퍼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장면이 생생하다. 한 때 사랑했던 이의 주검이 앞에 놓여 있고, 모두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통곡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어떻게 울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흔 네 살까지 천수를 누리시고 편안히 가셨는데 딱히 슬프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의 어린아이였던 것도 아니다. 난 당시 고2였다. 그리고 할머니와 소원한 관계도 아니었다. 옆에서 울고 있는 모두에 뒤지지 않을만큼 내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내가 슬펐던 것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을 때였다. 나의 아버지가 안경을 들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가슴이 쓰라려 왔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만 간접적인 슬픔을 느끼고, 타인의 죽음이라던가 타인과의 이별에 대해서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딘가 잘못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내가 보았던 죽음은 모두 천수를 누린 편안한 죽음이었고 내가 겪은 이별은 재회가 멀지 않은 미래에 예정된 이별이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해서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는 것은 감정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이러한 것들 때문에 내게 섭섭함을 느낀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럴만하다 싶기도 하다.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대학 초년시절 블로그 글입니다 최한철 2016.04.21 44
454 [2008.1.13]입대 전야 최한철 2008.01.13 394
453 [2008.1.13]가족 최한철 2008.01.13 398
452 [2008.1.11]외고 최한철 2008.01.11 486
451 [2008.1.9]나날 최한철 2008.01.09 435
450 [2008.1.9]감정 II 최한철 2008.01.09 402
» [2008.1.9]감정 최한철 2008.01.09 412
448 [2007.12.29]사랑 secret 최한철 2007.12.29 31
447 [2007.12.28]시 최한철 2007.12.28 456
446 [2007.12.26]22세의 나 최한철 2007.12.26 392
445 [2007.12.26]덧없음 II 최한철 2007.12.26 103
444 [2007.12.21]세상사 최한철 2007.12.22 423
443 [2007.12.19]1월 14일 군대 입영 최한철 2007.12.20 384
442 [2007.12.17]시험 끝 최한철 2007.12.18 374
441 [2007.12.14]학벌주의 최한철 2007.12.15 357
440 [2007.12.12]울분 file 최한철 2007.12.13 349
439 [2007.12.12]립스 최한철 2007.12.13 383
438 [2007.12.9]별 최한철 2007.12.10 90
437 [2007.12.6]지난 일기들 최한철 2007.12.07 372
436 [2007.12.5]책책책 최한철 2007.12.05 429
435 [2007.12.4]풍요로운 삶 최한철 2007.12.04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