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20]좋은 가을

2010.09.21 02:20

최한철 조회 수:464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기고자 다시 한번 되풀이하여 적는다.

사회에 있어 유효한 힘은 세 가지라고들 한다.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
명예에서 나오는 권위와 영향력,
그리고 돈에서 나오는 순수한 재력.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는 세 가지 모두를 원했다.
그러나 대학을 와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권력에 알맞지 않은 인간이란 것을 깨달았다. 권력이란 악마와 거래를 하는 것과도 같아서, 그 힘을 이용을 하면서도 영혼을 팔지 않기란 참으로 힘든 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성이 한없이 선한 그런 사람은 아니다. 굳이 어느쪽인가 하면 선악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한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런 피곤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권력에 가까이가면 필시 타락하리라 생각했다.

명예는 누구나 가지고들 싶어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언젠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명예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본질적 명예와, 단지 속은 텅 빈 표면적 명예. 전자는 얻으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실력과 행동에 뒤따르는 종류의 것이다. 실력과 행동없이 얻어진 표면적 명예는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되어 언젠가 당사자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수 밖에 없다는 걸 관찰하게 되었다. 따라서 명예에 관해서는 무심한 태도가 가장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적성과 소질과 천성에 비추어볼 때 사회를 무언가 바꾸어보려면 순수한 재력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융과 통계를 복수전공했고 돈을 좇는 젊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순수한 재력'은 없다. 재력 또한 권력과 마찬가지로 타락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명예와 마찬가지로 집착하면 그 주인을 해한다.

나는 실로 복잡한 인간이다.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내가 있고 그 삶을 지켜보며 언제나 골똘히 생각하는 내가 있고 그 생각하는 자신을 제3자로서 지켜보고 있는 내가 있다. 그렇기에 행동하기가 그만큼 까다로워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면 자신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재력을 추구할 수록 변해가는 나 자신도 느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다. 나는 저러지 않을 거다. 나는 안 그런다. 나는 괜찮을 거다. 마치 정치인들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자신은 부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그 무지한 믿음처럼, 나도 재력을 좇는 삶과 그 세파에 뛰어들기 전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목표로 하던 월스트리트에 점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속물적이 되고 위선적이 되고 결과가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기울곤 하는 나 자신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기에 지난 학기는 여러 가지를 실패했지만 의미있는 실패였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추스리고 자기반성을 하고 갈고 닦을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정이 결과와 상반되면 어느 순간 목표하는 결과 또한 변질되어 버린다. 옳지 못한 수단으로 옳은 결과를 얻는 것에 대한 논란의 대부분은, 그 결과가 실상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환상은 자신의 행동과 결과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져,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따라서 옳지 못한 과정을 밟는 사이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애초에 목표하던 옳은 목표 그 자체가 변질되어 옳지 못한 목표가 된지도 모른 채, 그 결과를 놓고 과거의 과정을 합리화시켜 버린다. 이런 현상은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더욱 자주 일어나는데, 자신이 똑똑하다고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자의식이 과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은 좋은 가을이다. 이제 번데기에서 깨어나 날아갈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번데기가 아닌 허물, 귀용이 아닌 탈피에 불과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아직 많이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가을은 좋은 가을인 동시에 매우 중요한 가을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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