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딸아이를 출산한다. 나름 기나긴 여정이었다. 초반에 모르고 항생제를 복용한 것에, 입덧에, 조산기에, 마취 문제까지 정말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여차저차해서 끝이 보인다. 이제까지 임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아껴 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흔한 유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2018년 한해를 거의 송두리째 정의한 임신 이야기에 대해서 기록해 두려 한다.


1. 임신 준비 및 임신


우리 부부는 2015년 말에 둘다 서른일 때 결혼했다. 딱히 늦은 나이는 아니라 생각했고, 나의 거취도 한창 불분명한 시기였기도 했고, 더 나은 결혼 생활과 와이프를 위해 신혼을 최소 1년을 가지자고 합의를 했다. 2016년 가을 콜럼비아로 온 이후에, 나는 석사 중에 임신을 해도 뭐 어찌저찌 키워지겠지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와이프가 아직 취직이 되지 않고서는 경제적으로도 불안하고 미국에 있을지도 불확실하니 석사마치는 것만 기다리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2017년 여름부터 취직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자 슬슬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 


임신 준비란 건 별다른 건 없었고 술을 줄이고 건강식단을 먹고, 운동을 하고 엽산을 먹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운동은 좀... 자주는 못했으나 나머지는 그럭저럭 지킨 것 같고, 와이프는 엽산을 좀 덜 먹었는데 그래도 건강한 생활을 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9월 즈음부터 임신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9월에 배란 시기를 완벽히 놓쳤고, 10월에는 아리송했다. 그래서 배란테스트기와 온도계를 구입해서 내가 매일 온도를 기입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와이프는 항상 까먹었다. 내가 잔소리를 하면 와이프는 왜 임신은 같이 하는 건데 자기만 신경써야 하느냐고 투정을 했다. 그래서 종종 내가 아침에 먼저 일어나서 와이프 입에 온도계를 물려서 재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둘다 꼼꼼하지가 못해 온도로 시기 맞추는 건 실패, 배란 테스트기를 활용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사용법을 잘 몰랐다. 임테기는 선이 짙어질수록 임신 확정이지만, 배란테스트기는 배란을 유도하는 호르몬의 양이 많아질수록 짙어지다가, 막상 배란이 되고나면 그 호르몬이 없어지므로 확 옅어진다. 어찌되었든 그때도 아리송하게 시기가 맞나 안맞나 하다가 11월 중순에 임신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임신에 빨리 성공한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9, 10월 실패하고 11월이 되니 서로 스트레스가 조금 있기도 했다. <아빠의 임신>이라는 책을 보니 건강한 정자를 갖기 위한 체크리스트가 있었는데, 거기 미루어보면 나는 그래도 꽤나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아랫도리를 차게 하고, 카페인은 몸에 안맞아서 절대 안먹고, 잘 때 휴대폰은 거실에 두고 자는 등의 습관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서는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당시에 기록해둔 일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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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사실을 안지 1주일이 지났다. 정신없이 지나갔다. 


와이프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 일단 굉장히 Grumpy한 노파같은 성격이 되었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아니면 몸이 불편해서 오는 짜증인지 분간할 수는 없다. 밤마다 배와 허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게 안쓰럽기도 하다. 일단은 전부 받아주고 있지만 가끔은 나도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런 심정일 것이다. 때때로 짜증이 나면서도 짜증을 내선 안되는 것을 인지하며 인내하는 상태. 요즘 와이프는 부쩍 어린아이처럼 구는데 아마 뱃속에 아기가 생겨서 둘의 평균 연령인 15세 정도로 정신 연령이 고정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청소, 빨래 및 요리를 내가 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아이를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든 노동이기 때문에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자취 경력도 10년이지만, 남자 혼자 살 때의 집안일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혼자 살 때는 밥 먹을 때도 간편하게 요리한 냄비에다가 먹고 치우곤 했는데, 지금은 설거지거리가 해도해도 쌓인다. 어떤 날은 열 번 정도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와이프는 예쁜 그릇에 담아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면 그릇을 수도 없이 쓴다. 


며칠 전에는 감자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레시피를 찾아서 감자탕을 해주었는데 이제까지 한 요리들 중 가장 성공한 것 같다. 음식점에서 먹는 감자탕 맛이라고 와이프도 대만족이었다. 레시피를 찾다 든 생각은 백종원 레시피는 정말 건강에는 무익하다는 생각이었다. 여러 레시피들을 보면 설탕을 너무 쓴다. 건강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편리를 추구하고 상업적이다. 그래서 여러 레시피들을 찾아서 짬뽕해서 썼다. 고추장, 고추가루, 간장, 액젓, 소금, 된장으로 간을 하고, 돼지등뼈가 없으니 목뼈를 대신 사용했다. 감자, 대파, 부추를 넣고, 시래기가 없어서 배추를 한번 데쳐서 말린 후 넣으니 그럭저럭 모양새가 났다. 그 외에는 스테이크를 구워주기도 하고, 새우구이를 해 주기도 한다. 어제는 장 볼 때 떡볶이를 사왔고, 언젠가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춘장도 사 왔다. 인스턴트는 어찌되었든 안되니 내가 직접 해 줄 생각인데, 짜장면은 직접 만들 수 있는데 이상하게 떡볶이는 귀찮아서 풀무원 제품이 있길래 사 왔다. 


일단 여기까지는 내가 남편으로서 잘 하고 있는 행동들이니 필히 기록해두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좀 못 해준 부분들은 생략한다. 그래도 와이프는 아이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잘 챙겨먹고 육아책도 열심히 본다. 확실히 모성애가 많은 편이다. 어제는 같이 육아다큐를 봤는데 태아때 임산부가 잘 먹지 못하면 바깥 세상이 배고픈 세상이라는 것이 입력이 되어, 태어나고 나서 인생을 살아가며 비만이 되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이라던가 기근 때 태어난 아기들을 추적해보면 50세 이후에 당뇨가 현저히 많다고 한다. 이를 태아 프로그래밍이라 한다. 


아직까지 사실 임신에 대한 감동이나 감흥,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그냥 무덤덤하다. 와이프는 내게, 역시 부성애보단 모성애인가보다라고 궁시렁하지만 부성애가 있으니까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요리해주고 집안일 해주는 거 아니냐고 하니 할 말이 없나 보다. 미운 8살처럼 행동하지만 어찌되었든 최대한 쓰담쓰담 보듬어주고 와이프에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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