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 되었을때 "여보!"하고 기겁해서 와이프가 날 불렀다. 사실 당시 임신이 되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임신은 마지막 월경을 기준으로 주차를 세는데, 그렇다면 벌써 우리가 임신 7주차였고, 수정된지는 5주나 지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임테기의 선이 수정된지 1주일만 지나도 99% 정확도를 가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수정된지 5주나 지났는데도 선이 희미해서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걱정이었던 것은 와이프가 염증 증세가 있어서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항생제를 복용하면서도 계속 임테기를 해 왔는데, 어떻게 임신 7주차에야 희미하게 선이 생기기 시작하는 건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찾아보니 수정 후 20일 간은 배아가 줄기세포 회복력이 있어 all-or-nothing 기간이란다. 즉, 부정적인 약물이나 술담배가 지나치게 들어오게 되면, 완벽하게 이를 수복하던지, 완벽하게 수복 못할 양이면 유산이 된다. 즉 어중간하게 기형으로 자랄 확률은 없는 시기인 것이다. 와이프는 11월 초가 수정 시기같다고 했고, 나는 주기가 늦은 점과 임테기 결과를 바탕으로 11월 중순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예정일을 역순으로 추산하면 더 정확한 수정 시기는 11월 15~20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후에 임테기를 되짚어보면 그때 정도가 정확하다.


모든 게 지나고 나서 지금에야 되돌아보면, 실제로 그때는 all-or-nothing 기간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에는 마지막 월경이 너무나 이른 10월 20일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11월 초 수정이었을 경우 태아의 장기 형성에 중요한 시기에 항생제를 복용한 것이므로 결손이 발생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와이프가 복용한 항생제 세 가지에 대해서 일일이 논문을 찾아보았다. 첫번째 항생제는 FDA 카테고리 C로, 추천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경우 임신 중 처방이 가능한 약들이었다. 논문 결과에서도 투여한 산모 집단 중 기형아가 2.2%, 투여하지 않은 집단에서 2.6% 발견되는 등 통계적 연관이 유의미하게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는 카테고리 D로 분류된 마지막 약이었는데, 이 카테고리는 동물 임상 실험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었으나 인간 임상 실험은 부족한 약들이었다. 이 약에 노출된 2296명의 아기 중 1.6%인 37명이 신경계 기형으로 태어났는데, 자연발생률이 1%인 23명이었고, 엽산 복용이 충분한 집단에서는 유의미하게 높지 않았다. 


신경 결손, 즉 Nueral Tube Defect (NTD)는 세계에서 매년 30만 건이 발생하는 가장 흔한 기형으로, 튜브가 수정 후 17일 장배 형성 시기에 형성되어 28일째 정도에 닫힐 때 완전히 닫히지 않을 경우 기형이 발생한다. 만일 11월 초일 경우 하필 딱 닫히는 시기에 항생제를 복용하였는데, 이 항생제가 엽산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박테리아를 죽이도록 기능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임신 주차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임신 주차의 문제로 돌아간 나는 임테기로 유추를 해 보았다. 와이프 이야기로는 항생제 때문에 임테기가 희미했던 것이 아니냐는데 조사 결과 난임 치료 등으로 HCG호르몬이 함유된 약을 복용하지 않는 이상, 감기약이나 항생제는 임테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둔 기록을 확인 결과, 12/4에는 희미하게, 12/5에는 선명하게 나왔으나, 12/5에도 테스트 선만큼의 굵기는 아니었다. 이 사실을 토대로 추론해 보기로 하였다. 먼저, 임신의 경우 주차별 호르몬 양은 아래와 같았다.


3 weeks LMP5 – 50 mIU/ml
4 weeks LMP5 – 426 mIU/ml
5 weeks LMP18 – 7,340 mIU/ml
6 weeks LMP1,080 – 56,500 mIU/ml
7-8 weeks LMP7, 650 – 229,000 mIU/ml

임신 테스트기의 sensitivity는 브랜드별로 다른데, 미국에서 시판되는 15개 대표 브랜드들의 범위는 20에서 100사이였다. 우리가 사용한 두 종류의 제품은 각기 10과 25의 민감도를 가졌는데, 이를 토대로 12/4에 희미했던 점을 미루어보면 절대로 6주차는 아님을 확정지을 수 있다. 만일 와이프의 주장대로 11월 초에 수정이 되었다면 임신 7주차인 12/4에는 최소 7650의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10-25 민감도에 희미하게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가 항생제를 복용한 시기는 all-or-nothing 시기이므로 태아에게 미칠 영향은 아예 없으며, 만에 하나 그 시기를 놓쳤다고 해도 연구 결과들을 훑어보면 그 확률이 지극히 미미하거나 자연기형률에 근접하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쓸 수 있지만 그 때는 정말 오만가지 걱정을 다 했다. 그리고 이렇게 쓸데없이 논문까지 다 조사하여 추론을 하고 결론을 내리고 했으나, 뭐 실제로는 몇 주만 기다리면 의사 선생님께서 더 확실한 검사 결과를 내려주실 것이었으므로 무의미한 노력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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