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2]임신 이야기 3 - 입덧

2018.08.23 07:23

최한철 조회 수:31

이것도 임신 초에 기록해두었던 것을 찾았다. 

아직 와이프가 팔팔한 것을 보니 입덧이 막 시작할랑말랑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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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상>


와이프: (비몽사몽으로) "여보, 여보 나 배고파"

와이프: "여보, 나 배고파 그 대야에 포도 담아서 식초물 넣어주세요"

나: "여보 나 좀만 더 자고.."

와이프: "여보 임신 때는 배고픈 상태 조금이라도 있음 안된대.."


<주섬주섬 일어나서 대야를 씻고 포도를 물에 잠기게 한 후 1/5 정도 식초물을 붓는다.>

<농약 및 중금속 제거용이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와이프: "여보, 나 오리고기가 먹고 싶어.. 두 점만 구워주면 안돼?"

나: "아우.. 무슨 두 점이야. 두 점 먹으면 네 점 먹고 싶지.. 두 점 구우면 또 일어나서 더 구워달라 할거잖아"


<주섬주섬 다시 일어나서 오리고기를 20점 가량 굽기 시작한다>


와이프: "여보, 나 입덧해서 음식 준비 냄새 못 맡아 방문 좀 닫아줘요.."


<방문을 답고 오리고기를 구우며 굽는 김에 어제 있던 복음밥에 참기름을 조금 넣어서 후라이팬에 덥힌다>

<와이프는 시각적 비위가 약해서 항상 예쁜 그릇에 먹기 좋게 담아줘야 한다. 예쁜 그릇에 담고 와이프를 부름>

<와이프가 먹는 사이 포도를 한알한알 떼서 물기에 헹구고 그릇에 담는다>


와이프: 냠냠


<역시 두 점이 아닌 한 열 점 먹음>

<다 먹은 후..>


나: 여보, 나 좀만 있다 치우면 안 될까?

와이프: 여보, 나 요새 입덧해서 냄새에 민감한 거 알잖아. 지금 치워줘요.

나: 후...


<남은 음식을 봉지에 버리고 설거지를 한다. 와이프는 뭔가 먹고 싶으면 주방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그릇을 쓰는데 도사다. 한 가지 음식 당 5개 그릇은 꺼낸다>

<설거지를 끝낸 후>


나: 아이고 좀 쉬어야겠다.

와이프: 여보, 우리 식당에 남은 돈 이사가기 전에 다 써야돼 여보.

나: 조금 있다 가자 여보 방금 밥 먹었잖아. (47초 전에 설거지 끝냄)

와이프: 여보, 나는 사람 아직 없을 때 식당 열자마자 가고 싶어.

나: 후..


<옷 챙겨입고 아래 층에 식당으로 향한다. 사람 복작복작거림. 원래 사실 12시 런치 오픈할 때 제일 많음>

<다이닝 달러가 많이 남아서 시리얼 바같은 것을 엄청나게 많이 사 왔다>


나: 아이고 좀 쉬어야겠다.

와이프: 여보, 나는 요새 집안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싫더라. 밥도 못 먹겠어. 우리 이거 집락에 예쁘게 담자.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나: 여보, 나 나중에 좀 쉴 때 배틀그라운드 해도 돼?

와이프: 안돼 여보 폭력적인 것하면 내 꿈에 나와. 어제 총쏘는 거 자는데 자꾸 생각났단 말이야.


<내 눈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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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몰랐는데, 정말 이때까지만 해도 천국이었다. 저런 장난스런 일기를 쓸 여유라도 있었으니까. 당시에도 와이프가 조금씩 헛구역질을 하긴 했으나 무언가 땡기는 것이 있다고 해서 갖다주면 곧잘 먹었다. 나는 입덧이라고 하면 흔히 드라마에서, 과일을 쟁반에 가져오던 며느리가 '우욱'하면 모두가 놀래서 쳐다보는, 그런 드라마틱하면서도 일회성인 사건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입덧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부터 몇 달간은, 이제까지의 결혼 생활 중 가장 와이프가 불쌍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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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사실을 안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최근 몇 주 이제 와이프의 입덧이 시작되서 정신이 없다.

치킨을 먹고 싶은데 반드시 코코윙즈에 간장맛을 먹고 싶단다. 

휴일이라 안한다고 하니까 반드시 코코윙즈라고 한다. 다음날은 치킨먹고 싶은데 배달오면 못먹을 것 같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아침에 병원을 방문하고 나서 배고프대서 루크랍스터 갔는데, 랍스터만 빼고 토스트부분만 먹었다.

그러고 나서 배고프대서 목자라는 한인음식점에 한국식 치킨 먹으러 갔는데 한개 먹고 못먹겠대서 싸왔다.

그것보다도, 집에서 모든 냄새에 매우 민감해서 바로바로 치워야한다. 

그런데 마!누라!는 이 음식 준비하다 그거 못먹겠다하고, 저 음식 준비하다 못먹겠다하는데 문제는 그걸 다 엉망진창 벌려놓고 냄새난다한다.


그래서 난 벌려놓은거 치우고 설거지하느라 매일 열번은 설거지를 한다. 

입덧에 뭐가 좋은지 알아보니 아이스크림, 탄산수, 크래커가 좋다는데 다 몸에 별로인 것들이지만 그래도 사다 놨다.

신기한 것이 집밖에 나오면 그렇게 잘 먹는다. 재균이 부부네 갔는데 피자를 엄청 잘 먹길래 다음날 시켜줬더니 못 먹는다.


오늘은 종로 바베큐갔더니 굶은 사람마냥 돼지고기랑 냉면을 그렇게 많이 먹었다.

요며칠간 뭘 요리해줘도 먹질 않아서 살빠져서 걱정했었는데,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당분간은 외식을 위주로 해야겠는데 한편으론 집밥만큼 영양도 안맞으니 걱정도 된다. 

비타민도 억지로 맥이는데 자꾸 뱉어내고, 엽산은 그래도 모성애로 버티며 먹고 있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니 입덧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겠다. 

와이프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내게 푸는 경우가 많은데 꾹 참다가 가끔씩 화를 내고 후회하곤 한다. 

어렷풋이 왜 아픈 가족이 있으면 주위 사람이 힘들고 불화가 생기는지 이해할만도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 오늘부터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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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일기를 쓸 때만 해도 그래도 입덧이 견딜만할 때였다. 그러다 정말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산모들 중에서도 극도로 입덧이 심한 편이었는데, 불행 중 다행은 입덧이 심할수록 임신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것이라서 유산할 확률은 더 낮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9주차 정도 때는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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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주차부터 와이프가 입덧을 시작하는데 점점 심해지기 시작한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9주차에 가장 심해지고 12주차 이후에 사라진다는데, 현재 9주차라 그런지 매일 토하고 난리다. 살도 4kg이 빠져서 걱정되기 시작한다. 정말 애매하게 된 것이, 1/1에 콜럼비아 보험이 끝났는데 회사 보험은 내가 OPT 카드가 아직 안와서 일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잠시 몇 주 무보험인 상황에 입덧이 심해서 링겔같은거 맞는 것도 복잡하다. 


5~6주차 초기에는 헛구역질을 조금 하고 음식을 가리기 시작했고, 땡기는 특정한 음식이 많아졌다. 과일을 많이 먹어서 밤중에 딸기 사러 나갔다 오기도 하고, 보통 남편들이 하는 것들을 나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먹는 것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불량식품들 - 크래커, 리츠, 아이스크림, 빵 - 등이라서 어쩌면 입덧이란 임산부들이 남편들을 착취하기 위한 거대한, 암묵적인 정신적 카르텔이 아닐까라는, 임산부들이 들으면 맞아죽을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7주차를 지나면서 점점 구역질이 심해지고 음식 냄새를 못 맡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는 갑자기 고기가 땡긴다고 해서 케이타운의 종로 상회에 가서 돼지고기를 배터지게 먹기도 했다. 신기한 것이 그러고 나서 다음 날에는 도저히 돼지고기 냄새를 못 맡겠다고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한다. 8주차가 되니 구토를 하기 시작해서 저녁만되면 음식을 입에도 대지 못하고 액체류만 마시기 시작했고, 이번주 9주차에는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있어 많이 걱정된다. 8~9주차에는 정말 와이프가 뭔가가 땡기는 것도 잘 없는데 땡긴다고 할 때 즉각 그걸 가서 먹으면 그래도 입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노려야한다. 그마저도 9주차 때는 저녁되서 토해내지만. 


9주차가 피크라고 하니 그것만 믿고 참고 있다. 와이프가 많이 힘든지 나한테도 짜증이 늘어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지만 와이프 힘든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니 참고 지낸다. OPT 카드가 늦게 나와서 일 시작이 1월에서 2월로 미뤄졌는데 참 다행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난 바깥에 나가 있고 와이프만 집에 있었다면 정말 임신 우울증이 생겼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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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살이 정말 안 찌는 체질이다. 한의학적으로 말하면 태양인이고, 엄마랑 똑같은 체질인데, 언제나 소화가 안되고 예민하며 신진대사가 빠르다. 그래서 키가 169 정도 되는데도 항상 47~48키로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 와이프가 입덧이 시작되고 나서는 41키로까지 갔으니, 뼈만 앙상한 것이 정말로 기근을 겪는 사람 같았다. 얼마나 심했는가하면, 정말 물만 마셔도 몇 분 후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이 때는 정말 뭐라도 먹으면 그게 가뭄의 단비같았다. 호박죽같은 한국 음식들이 가끔 땡긴다고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우버를 타고 포트리까지 가서 사오는 일이 잦았다. 이 때 그나마 먹을 수 있던 음식이 포, 즉 베트남 쌀국수였다. 그것도 고기는 다 건져내고 국물과 면만 먹을 수 있어서, 집 근처에 있는 사이공 카페에 몇 주를 출퇴근하다시피했다. 다행히 정말 요리 실력 좋은 모자가 운영하는 곳이라 나도 질리지도 않고 먹었는데, 와이프는 입덧이 끝나고서는 그곳 생각만 해도 헛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해서 가지를 못한다. 그 외에는 엔슈어라는 영양 드링크의 도움을 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프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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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 정말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와이프의 입덧은 점점 심해져서 5kg가 빠졌다. 위험한 상황인지 걱정스러운데, 의사는 unisom이란 수면제를 반 알씩 하루 두 번 먹으라고만 했다. 하필 지금 이직 중이라 보험이 없는 상태라 응급실에 가서 링겔도 마음대로 못 맞겠다. 와이프가 하루하루 극심하게 힘들어한다. 평소에 소화도 잘 안되는 체질이라 소화불량에 구토까지 더해지니 사람이 피폐해진다. 와이프도 걱정이고 아기도 걱정이다. 와이프는 지금 모성애고 뭐고 힘들어 죽겠다며 나쁜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나는 임신을 안해봤으니 직접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소리하면 안된다고 혼내니 와이프도 납득한다. 정말 힘든가 싶다. 비타민도 못 먹고, 영양도 섭취를 못하니 아기가 많이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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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의 입덧이 점점 심해져 간다. 살도 5kg가 빠졌다.
어제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든 와이프의 팔이 너무 앙상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오늘 병원을 방문했는데 소변 검사 결과 와이프의 몸이 망가져가고 있다고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하필 무보험이라 2/1에 입원가능하다고 하니 다른 약을 줬다.
초음파를 해 보니 아기는 건강하단다. 의사선생님이 웃으시며 엄마는 죽어가는데 아기는 건강하네 하셨다.
의사선생님이 초음파실을 나가시고 와이프는 펑펑 울었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 돌아왔는데 와이프가 종이에 내가 와이프한테 정신력이 약하다고 했던 이야기들을 일기처럼 써놨다.
내게 섭섭하다고 했다. 많이 반성했다. 
마음이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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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수 증상까지 생기자 의사는 입원을 권장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콜럼비아 학생 보험이 끝나고 아직 켄쇼 회사 보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달 가량 임시 보험에 가입했었던 때라, 수천만원 나올지도 모르는 입원비가 무서워 그러지는 못했다. 그 때 그래도 애기는 건강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와이프는 그래도 너무 안심이라고 진료실에서 엉엉 울었다. 너무 사태가 심각해지자 장모님이 한국에서 거의 이튿날 비행기표를 끊다시피하셔서 오셨다. 역시 어머니의 힘인 것인지 장모님이 오시고 나서부터 장모님이 해주시는 음식들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더니 42, 43키로 정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막 켄쇼 회사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는데, 비자 문제가 생겨 1월에 출근할 것이 계속해서 미뤄져서 2월 중순 넘어서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첫 출근이 가까워지고 장모님이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지자, 걱정이 되어서 결국 와이프도 한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 가서는 그래도 조금씩 회복을 해 갔다. 


와이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와이프가 한국 가 있던 3월에는 나도 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메말라가고 피폐해져가는 배우자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하는 것, 그 상황에서 서로가 받는 스트레스, 와이프가 내는 짜증들을 이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나는 짜증, 그리고 그 짜증을 절대로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삭히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약 두 달 가량 진행된 극심한 입덧에 나도 많이 스트레스를 받던 터였다. 물론 그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왜 병든 배우자를 부양하는 노부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어렷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버티면 끝이 있는 고통이었지만, 죽어야만 끝나는 고통을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채 지속적으로 맛봐야하는 그 삶은 얼마나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을까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정말 와이프와 내 건강을 열심히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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