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해야 하는가? 애는 낳아야 하는가?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당연하게 정해져 있었다. 정말 너무나도 당연히 모든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되어 있는 문제였다. 그런 사회에서 자란 나였기에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애도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연애를 할 때마다 결혼에 대해 생각을 했고, 이 사람이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 싶은 사람과 결혼을 했고, 지금쯤 애를 낳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싶을 때 애를 낳았다. 이에 대해 후회하는가? 나는 정말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다시 시간을 돌아가더라도 지금의 내 와이프와 결혼을 했을 것이고, 석사 졸업을 앞두고 임신을 했을 것이다. 나는 현재 행복하다.


그럼에도 이 질문에 대해 지금 생각하는 이유는, 그저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겪고 나니 훨씬 현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지만 그 행복이 내가 인지하고 예상한 상황에서 온 행복이 아니라, 그저 무지한 상태에서 잘못된 사회적 합의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채로 내린 선택들인데, 나의 특정한 케이스에서는 그것이 운좋게도 행복한 상황에 처한 것 뿐이다. 그 부분이 찝찝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의 행복은 사람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다. 내향성, 외향성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지나친 관계맺음이 피곤한 에너지 소모이지만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그것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활동이다. 전자에게의 행복한 주말과 후자에게의 행복한 주말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하나의 성격 특성만 놓고 봐도 이럴진대, 하물며 인생의 행복이라는 광범위한 문제를 정의하는데 얼마나 복잡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할까. 그런 복잡다양한 요소들을 다 감안하고 나면, 사람에게의 이상적 행복이란 각 개인의 성격의 다양성만큼 실로 다양한 모습일 것이다.


사회, 특히 한국 사회는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한 수용이 굉장히 낮은 사회다. 성소수자를 대하는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주류와 다른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이 되고, 아직 어른이 아닌 취급, 즉 '덜 된 인간' 취급을 받는다. 그렇기에 명절에 친척이 모이면 그런 보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은 지속적으로 추궁을 한다. '비혼주의자'나 '돌싱'이라는 단어를 거론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미혼자와 이혼자에게 관대해진 것도, 미혼자와 이혼자의 숫자가 어느 정도 많아서 주류인 측에 속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다. 


하지만 정말 결혼을 하면 행복할까? Ted 강연에서 본 벨라 드팔로의 연구에 따르면, 미혼자들의 행복도는 미혼일 때 10점 만점에 7점 초반대를 유지하다가, 결혼하기 6개월전부터 7점 중반대까지 행복도가 올라간다. 결혼 후에는, 1)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다시 서서히 7점 초반대로 행복도가 원상복귀되고, 2) 이혼하는 사람들은 6점 초반대까지 내려간다. 만일 이 연구가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면, 결혼은 개인의 행복감에 관련해서는 밑져야 본전인 장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아마도 농경 사회의 뿌리깊은 유교 사상이 대대로 이어져 온 것을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수용해온 결과일 확률이 크다. 농경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곧 재산이고, 아이 하나가 집안에 귀중한 자원이다. 대가족이 보편화되어 있던 사회에서 그 대가족의 운영 주체인 웃어른들이 결혼해서 아이 낳아라고 하는 것은, 곧 회사 경영진이 성과를 내라고 독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들이 중시된 이유도, 딸은 결국 시집가면 다른 대가족의 자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철지나도 한참 철지난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에 있어 밑져야 본전인 결혼이,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로' 그렇게 당연스레 받아들여져 왔다. 


출산과 육아는 어떨까? 사람들은 아기를 낳는 것이 결혼 생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큰 걸음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부부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도 역시 사회적으로 이미 합의가 된 부분이고 나도 그렇게 의심없이 생각해 왔다. 하지만 학술적으로 연구된 통계치를 보면, 사실은 그것과 정반대다. 아기는 부부 관계에 굉장히 위험을 가져다 주는 존재다. 

  • 최초의 근거는 사회학자 LeMasters의 1957년도 연구인데, 그에 따르면 83%의 부부가 출산 후 갈등이 늘어났다.
  • 90년대 10개 선진국에서 조사한 결과, 결혼만족도는 출산 후 15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자녀가 집을 떠나고 나서야 개선되기 시작.
  • 출산 후 12개월간 적대감 지수는 급상승하며, 부부 양쪽의 우울증 리스크도 급상승한다.
  • 대규모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한쪽만 아이를 원한 부부 중 출산 후 갈등을 겪을 경우, 100%의 샘플이 전부 아이가 5세가 되기전에 이혼했다.
  • 이러한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1) 부부 양쪽이 아이를 원해야하며, 2) 계획 임신을 하여 원하는 시기에 낳아야 한다.
물론 세상에 일방적으로 나쁜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다. 결혼만족도가 낮아지는 것만큼 그 반대급부로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그에 오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출산과 육아가 마냥 장밋빛인, 무조건 해야만 한다거나, 하기만 하면 지금보다 행복도가 무조건적으로 나아지는 마법의 영약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결혼과 출산은 각 개인이 행복의 우선순위와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다른 "개인의 선택"의 문제에 불과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듯이, 아무런 리스크나 부작용도 없이 좋기만 한 약은 없듯이,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장점과 얻는 것들이 많은만큼 단점과 잃는 것들이 많은 선택일 뿐이고, 출산 또한 장점과 얻는 것들이 많은만큼 단점과 잃는 것들이 많은 선택일 뿐이다. 장점이 많은가 단점이 많은가는 정말 순전히 사람들의 가치 기준, 효용 함수에 따라 다른 문제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공적인 결혼 생활, 혹은 비혼 생활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깊게 잘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와이프와 내가 서로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결혼 생활과 출산, 육아가 순탄하게 유지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그냥 살면서 쌓아가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정말로 저변에서 굳건해야 많은 부분들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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