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7]홍콩에서 있었던 일 - 2

2018.10.07 12:51

최한철 조회 수:163

2.


A는 내게 세 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 제안은, B회장이 제안했던 옵션 트레이딩 교육을 본인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는 소위 '노는 현금'들이 엄청나다고 한다. 변호사, 의사들 중에 잘 버는 사람들은 수십 억에서 수백 억의 현금을 쟁여두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돈도 있고 시간 여유도 꽤 있기 때문에 그런 교육에 500만원씩 쓰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0주 과정에 5인에서 10인 팀으로 가르치면 인당 500만원씩 받을 수 있고, 거기에서 나와 A가 7대 3으로 나누자는 것이었다. 나는 교육 자료와 강의를 준비하고, 그는 세일즈와 여러 행정적인 부분을 담당하겠다고 하였다. 둘째 제안은, 스포츠카 동호회에 또 소위 말하는 부자들이 모여있는데, 그곳 사람들에게 200억 정도 투자운용해달라는 제의를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제안이 실로 희한한 것이었는데, 아프리X 방송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현재 모 증권사 채권 트레이더 C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C는 증권사 업무보다도 아프리X 방송으로 월 1억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고 하였다. 나는 도대체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말도 안되는 액수에 놀랐는데, 들어보니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한국에서 과거에 선물이나 옵션을 하려면 증권사에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만 증거금으로 예치하면 1계약을 매매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실 50만원만 넣고 1계약을 하는 것은 엄청난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코스피지수가 1포인트만 움직여도 원금을 전부 날리는 것인데, 그 반면 1포인트만 먹어도 자본금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런 고레버리지 도박이 지속가능할 리가 없다. 도박성이 강한 한국 개미들은 옵션에서 많은 돈을 잃었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감원에서는 증거금을 대폭 강화해 1계약을 하려면 1500만원에서 2000만원을 예치하도록 규정을 변경하였다. 이에 음성적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대여업체'들인데, 이 대여업체들은 쉽게 말해서 50만원의 증거금만 입금하면 1계약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불법 증권거래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대여업체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아무리 불법 업체라도 정식으로 서버를 운영한다면 개미가 어떤 선물을 1계약 매수하면 그 매수 주문을 실제 거래소로 보내 업체가 1계약을 매수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 포지션이 돈을 벌면 개미에게 수수료를 빼고 전달하는 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그런 소액을 넣고 단기간 내에 수배의 수익을 내고자하는 개미들은 대부분 원금을 전부 손실내기 때문에, 개미가 트레이딩하는 부분을 거래소로 보내거나 헷지하지 않고, 그냥 원금을 다 까먹을 때까지 내버려 둔다. 결국 개미는 가상의 데이터 속에서만 돈을 잃고 따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 1억 씩 터트리는 개미들이 간헐적으로 나오는데, 그럴 경우 전화기 선을 끊어버리고 잠적하여 새 오피스를 임대하고 이름을 바꾼 대여업체를 오픈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국내 대여업체 중 1위 업체가 월 5억을 번다고 하였다. 


먹튀가 잦은 대여업체의 특성상 개미들에게 어필하려면 무엇보다도 신뢰성을 강조해야 한다. 저런 식으로 먹튀를 당하더라도 개미들 스스로가 불법업체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신고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도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몇몇 아프리X 주식 방송인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주식이나 선물 "리딩" 방송이란 것을 하는데, 그 리딩이 솔직히 leading인지 reading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리딩 방송이란 것은 결국 매수 매도 시그널을 제공하는 것인데, 주식 시장의 매매시간 동안 방송을 켜두고, 언제 살 지, 언제 팔 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방송이다. 그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고 구독자들이 늘어나면, 슬슬 프락치를 투입한다. 구독자 중의 한 명으로 위장하여, '그런데 C님은 어느 대여업체 쓰세요? 이번에도 먹튀당해서 도저히 어딜 신뢰해야할지 모르겠네요'라고 넌지시 던지면, '그건 사실 방송에서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렇네요'라며 두세번 정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네번째 정도에 쪽지로 알려주겠다고 하면, 순진한 다른 구독자들도 쪽지를 공유해달라고 하든지, 혹은 방송에서 넌지시 자기가 직접 아는 동생 업체라며 흘린다. 그렇게 해서, C가 방송 자체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500만원에 불과하지만, 대여업체로 추천을 해주고 받는 리베이트가 억대에 달한다는 것이 A의 설명이었다. 가장 많이 번 것이 두 달 전이었는데 무려 1억 5천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기이하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말도 안되는 액수에 호기심이 동한 나는 일단 C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얼마 후, A와 함께 여의도의 어느 카페에서 C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화려한 명품들을 두른, 상당히 강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앉아서 인사 치레를 하고 나서, C는 나지막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S라는, 뉴욕대 출신 유학생이 아프리X 증권 방송가에 혜성처럼 나타났는데, 뉴욕대 경영학과도 아니고 무슨 다른 문과면서 학교 이름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9위로 치고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철씨는 스턴도 나왔고 시카고 옵션거래소에서 현역 트레이더였으니까 우리가 힘을 합하면 탑 1, 2위를 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증권방송가에 탑 1위는 누군데 프로필이 어떻고 세일즈 전략이 어떻고 어떤 부분이 강점이고 어떻게 어필하고 줄줄 분석한 것들을 쏟아냈다. 그런 사람들도 대여업체 리베이트로 돈을 버냐고 하니 당연하다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나는 대여업체가 불법이라 방송 부분은 조금 꺼려지니, 만약 스포츠카 동호회에서 200억 투자를 유치할 수 있으면 운용해 보고 싶고, 아니면 옵션 교육을 하면서 석사 준비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대여업체가 불법이지만 모든 책임 소재는 대여업체에 있고 실형을 살더라도 그들이 산다고 하며, 게다가 그들은 방송용 가명을 쓰기 때문에 법적인 구멍이 있어 안전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B회장이나 C트레이더부터 시작해서, 이상하게도 한국의 트레이더들은 무슨 대구 과메기라던가 목포 아이언맨 등의 희한한 가명들을 사용했었는데, 이유가 거기에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거절 의사를 밝혔더니, 그러면 차차 생각해보라며 시청 권한을 드릴테니 본인 방송에 한번 와 보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트레이더 C와 헤어진 후, 또 다시 A와 맥주 한 잔을 하러 갔는데, A가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본인은 지금 C 밑에서 홈페이지 꾸며주고 홍보 부분 도와주면서 수익 10%를 가져가고 있는데, 사실은 그냥 노하우를 알아 보려고 그러고 있는거고 C도 본인한테 10%주는게 아까운지 요새 조금 낌새가 그렇다, 굳이 C랑 같이 가서 스플릿할 거 없이 자기와 둘이서 이걸 하면 훨씬 높은 수익배분이 가능하다, 그런 요지였다. 그 때 든 생각이, 아니 B회장도 단물 빠졌다고 하고 C 트레이더한테도 노하우만 가져가 보려 한다고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언젠가 내게도 그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슬슬 A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싫은 환경이다. 동업자들끼리 신뢰할 수 없이 리바이어던처럼 그렇게 눈치싸움해서야 숨막혀서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서야 A가 처한 상황과 그의 심리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A를 만나고서 정확히 일 년 후의 나는 이놈도 못 믿겠고 저놈도 못 믿겠다고 생각하는 의심 덩어리였다. 나는 그런 내가 싫고 그렇게 나를 만든 환경이 싫어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만일 그런 환경에서 더 있어야 하는 환경이었으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고 내 이익만 보전하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유학생이었던 A도 처음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한국 트레이딩계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리 저리 치이고 속고 하다보니 눈치만 늘고 남에 대한 신뢰도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A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나마 젠틀한 축이었다. 적어도 그 후에 만난 사람들처럼 남을 대놓고 속이거나 치사한 방식으로 등처먹지는 않았으니까. 얼마 후 생각이 나서 C의 방송을 들었는데, 듣다가 이건 안되겠다고 내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푸른 까마귀님 별풍선 감사합니다~~"라고 C가 말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이런 젠장 내가 월 1억이라는 돈에 홀려 소위 말하는 별창이 될 번 했구나!'라는 생각에 온갖 자괴감이 들며 창을 닫고 마음을 정리했다.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시카고에서 옵션을 거래했다는 경력 때문인지, 증권사의 꽤나 높은 사람들에게서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막상 가면 하나같이, '한철 씨는 참 아까운 인재네, 근데 어쩌지, 나이가 아직 20대면 경력에 비해 너무 어려서 사원이나 기껏해야 대리로 입사시켜야 할 것 같은데, 한철 씨가 어디 그래서 만족하겠어? 금방 어디 가버리고 말겠지, 그렇다고 뭐 20대에 과장을 줄 수도 없고' 식의 모호한 말만 하다가 계속 연락하며 지내다가 어디가는지 알려달라면서 명함이나 교환하고 마는 것이었다. 


M투자자문도 그런 곳 중 하나였는데, 투자자문 이름은 생소했지만 제도권 유명 H증권사의 전 대표가 그곳 사장으로 있어서 면접을 보러 갔었다. 사무실은 굉장히 넓고 번듯했는데, 내가 점심 시간 끝무렵에 면접을 보러 가서 그런지 텅텅 비어있었다. 사장실로 가니 사장과 K차장이 있었는데, 이 K차장은 후일 홍콩에서 함께 근무하게 된다. 나는 미국에서의 면접을 생각하고 옵션 이론과 여러 트레이딩 전략, 수학 면접을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면접이라기보단 면담에 가까웠다. 이 사장도 다른 나이든 금융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아참 한철 씨 마음에 드는 인재인데 당장 어디에 써야될 지를 모르겠네라며 혹시나 무슨 펀드가 생기면 맡겨 보겠다는 말을 하며 끝이 났다. 면접이 끝날 무렵 점심시간도 끝이 나서, 우르르 십수명되는 여직원들이 들어왔는데 하나같이 미인들인 것이었다. 사무실 분위기와 겹쳐 그 광경이 굉장히 기이하게 보였다. 그런데 K차장이 담배를 피겠다며 나를 따라 나와, 담배를 피면서 내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요지는 왜 이런데 오려고 하냐고, 여기 굉장히 이상한 곳이라고, 예쁜 여직원들로 세일즈해서 투자금 끌어모으는데 자기도 여기 입사한지 일주일밖에 안됐지만 너무 법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곧 그만두려하는데, 한철 씨 정도면 대기업 투자운용사 들어갈 수 있을테니 그런 곳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는데, 몇 달이 지나 K차장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의 말로는 그 M투자자문의 사장, 즉 유명 H증권사의 전 대표는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회장은 개미들 돈 3천억원을 들고 튀어 수배 중이라고 했다. 결국 구속은 되었으나, 3천억 원의 행방은 묘연했고, 그 실질적인 사장은 3년형을 받고 복역했다고 한다. (사실 K차장이 그렇게 신뢰성이 높은 인물이 아니라서 3천억 원이라는 액수, 3년형이라는 형기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계속해서 지원은 하고 면접도 보았지만 취직은 되지 않았고,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져만 갔다. 나는 정말 J밥이었구나, 시카고에서 트레이더였다고 자부심을 가졌는데 그게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Z대표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 Z대표가 바로, 내가 홍콩을 가게 된 원흉이자 첫 글에서 언급한, 낯빛이 곱고 언변이 수려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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