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7]홍콩에서 있었던 일 - 3

2018.10.20 02:46

최한철 조회 수:72

3.


구직활동 중 잠시 대구에 내려갔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하고 받았더니 중저음의 남성이다. A라는 유명한 헤지펀드 관련해서 구인 중인데 사람인에서 보고 연락드렸다고 했다. A사를 검색해보니 뉴욕과 런던에서 이름있는 헤지펀드였다. 그의 말로는 그 펀드가 아시아에 진출하려고 물색 중이라고 했다. 솔직히 헤지펀드면 리쿠르터 통해서 연락줘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살짝 이상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일도 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여의도 IFC 어디로 면접을 보러 가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봄을 맞은 것이 군시절이었으니 당시에 6년 만에 느껴보는 한국의 봄은 정취가 있었다. 미세먼지와 황사는 끔찍했지만 그래도 모국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포근함이 있다. 사실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 이렇게 쓰는 것일테고 당시에도 그렇게 느꼈었는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당시 나는 여의도 IFC쪽을 거의 처음으로 가 보았는데, 번듯하고 깨끗하니 외견 상으로는 세상 어느 도시보다도 깔끔하고 현대적이었다. 상당히 고층이었던 기억인데, 안내를 받아 긴장한 채 면접을 볼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다른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얼마 있다 Z대표가 들어왔는데, 실로 낯빛이 곱고 훤한 사람이었다. 호감형 얼굴에 중후한 인상, 그리고 목소리도 중저음의 신뢰가는 인물이었다. 미국의 면접들처럼 테크니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한국 면접들처럼 가볍지도 않았다. 트레이딩에 대해 대단한 전문성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표로서 연관있는 질문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동안 그래도 세 면접자 중에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연락드릴게요라는 여지를 남기고 별다른 확답은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힐튼 호텔의 무슨 식당에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합격한건가 싶어서 갔더니 그 때 면접 보았던 다른 두 명도 그곳에 있었고, 놀랍게도 M투자자문에서 그곳 대표와 함께 내 면접관을 했다가, 나오는 길에 그 회사로 오지 말라던 K차장도 구직활동을 하느라 그곳에 있었다. 


식당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데 내 앞에 대표가 앉는 바람에 내가 고기를 구웠다. 한쪽이 잘 익어서 선홍색 육즙이 올라올 정도 되었을때 한 번만 뒤집어야 소고기는 맛있는 법인데, 그것이 굉장히 언짢은지 계속해서 대표가 먼저 집게를 들고 미리 뒤집는 것이었다. 그것이 반복되다보니 아, 대표가 조금이라도 탄 것을 싫어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결벽증이 있던지 어지간히 귀하게 자랐던지 아니면 건강 신경을 엄청나게 쓰던지 셋중 하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화는 그냥 면접자들과 저녁 먹는 것같은 분위기에서 호구조사도 조금 들어가는 식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다 같이 호텔 지하에 있는 노래방을 갔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런 것들이 싫다. 한국 정서상 이해는 하는데 솔직히 후진적이고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직업적 영역에 사적인 활동을 집어넣는 건지. 요즘은 한국에서도 반찬을 각자 덜어먹는 추세지만, 비유하자면 10년 전 흔한 풍경처럼 마치 가족도 아닌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침 묻힌 숟가락 젓가락으로 섞어가며 같이 반찬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왜 회사 면접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인 구직자인지라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대충 분위기 맞춰서 술을 마시고 분위기 맞춰서 가끔 한 곡씩 불렀다. 다른 두 면접자는 한 사람은 미국에서 박사를 하다 논문을 마치지 않고 수료만 한 채 귀국한 J라는 분과, 금융공학 석사를 한 N이라는 분이었는데, 두 분 다 나보다 나이가 6살 이상 많아서 조금 더 유연하게 잘 어울리긴 했지만 대단히 활발히 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때, K차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넥타이를 풀어 이마에 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위스키를 한잔 들이키고 탬버린을 들고 날뛰기 시작했다. J, N과 나는 뻘줌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구경하였는데, 나는 속으로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저것이 과연 면접에 도움이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습게도 나는 개뿔도 없는 처지가 된 그 와중에도 트레이더라는 존심이 있어서, 저렇게 해야 오퍼를 받을 수 있다면 안하고 만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국 K차장은 인사불성이 되어서 누가 데려다 주었다. 그 외에는 도중에 B이사라는 사람과 Y팀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Y팀장은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서글서글한 인상이었고 B이사는 안경을 쓰고 덩치가 큰, 지적이면서도 욕심은 있어보이는 인상의 사람이었다. B이사는 콜럼비아대를 나오고 유명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근무했었다고 했다. 그날 밤늦게 무언가 씁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어찌되었든 얻은 정보는, 홍콩에 지사설립을 하려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퀀트 트레이딩을 위주로 할 예정이라 했다. 그 후, 당시 37세였던 N씨는 본인은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어서 홍콩까지 그렇게 리스크 테이킹할 깜냥도 안되고 퀀트 트레이딩 시작할 실력도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서 조금더 안정적인 다른 회사 오퍼를 수락할 예정이라고 하며 면접 과정을 그만두었다. 아마 나보다 7살 위였던 그는 그만큼의 연륜이 있었기에 무언가를 눈치채고 빠져 나갔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


얼마 있다가 다시 Z대표 J씨와 나를 불렀는데, 또 어떤 호텔의 바였던 기억이 난다. 그 바에 들어가서 예약 이름을 말해주었더니, 어느 협소한 옆통로로 나를 안내해 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Z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T부장이란 사람이 여성 한 명을 껴안고 나를 쳐다 본다. 이게 말로만 듣던 룸살롱인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 호텔 바에서 음성적으로 작게 운영하는 듯 했다. T부장은 40대 후반 정도 되는 아저씨였는데 이름을들으면 알만한 모 증권사의 부장으로 파생상품 쪽을 한다고 했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잠시 그 여성분을 내보내고, 인사를 하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딱 보니 트레이딩, 특히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Z대표가 우리를 평가하기가 힘드니 나름 그쪽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우리를 재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래도 처음으로 옵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가 그 T부장은 새로 불러온 여성과 자리를 떴고, 우리는 Z대표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를 파했다. 그 날이 내가 술자리에서 남성을 접대하는 여성을 최초로 본 자리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부감이 엄청 심했고 그 T부장에 대해 역겹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래도 Z대표는 여성을 부르지 않아서 조금은 덜 더러운 사람이겠거니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 날 이후, Z대표가 무슨 서울대 모임이 있는데 서울대 쪽에서 따로 둘이서 볼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그 때 마침 영익혼 모임이었던지 병수를 보러 간건지해서 볼 일이 있었어서 그쪽에서 대기하다가 약속 장소였던 카페로 갔다. 이 즈음해서 나는 미국 보스턴의 운용액 1조 정도 되는 규모의 W라는 헤지 펀드와 리서치 포지션으로 면접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곳에 있는 지인이 추천도 해주었을 뿐더러, 한국에 투자할 계획 때문에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을 뽑아야 했는데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고 있던 터라 면접관도 나에게 굉장히 뽑힐 확률이 높다고 직접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Z대표가 내게 확답은 주지 않고 계속 모호하게 질질 끄는 태도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9시경 카페에서 그를 만나서는, 확답을 요구했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와서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아무래도 이제까지 후보들 중에 한철 씨가 가장 팀장을 맡기에 적합할 것 같으니, 홍콩팀을 맡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오퍼라던가 시기는 모호하게 굴어서, 내가 그럼 대표님 믿고 W펀드 면접 그만 두어도 되겠느냐고 하니까 그러라고 구두로 약속한다고 하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20년 이상 단 한번도 손실을 본 적 없는 유명 퀀트펀드 W와, A사의 아시아 진출이라지만 너무도 의심스러운 사내, 둘 중에서 선택은 자명했다. (물론 W펀드에서 오퍼받는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었다) 찬찬히 짚어보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그널은 항상 있어왔다. 사람인을 보고 연락했다는 것도 이상했고, 그를 아무리 검색해도 신원을 알 수가 없었고, 서울대를 나왔다는데 아버지가 찾은 졸업생 명부에 그의 이름이 없었고, 영어에도 능숙하지 않은 듯이 보였던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아직 트레이딩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점과, 내 팀을 꾸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팀장'이라는 감투, 보스턴에서 이루지 못했던 헤지 펀드에 대한 미련이 더해져서 점점 그에게 혹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양대 경제신문사 중 하나에 A사가 한국에 본격 진출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서는, A사의 주요 투자자들은 테마섹, 아부다비투자청과 같은 국부펀드와 글로벌 연기금들이라고 소개하며 상세한 한국 사무실 위치까지 거론했고, 무엇보다도 Z대표의 얼굴을 크게 싣고 있었다. 모든 기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의 몇몇 수준 미달의 기자들은 돈만 몇 푼 쥐어주면 그런 기사는 얼마든지 사실 확인 없이 실어준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나는, 설마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신문사에서 나온 기사가 거짓일까라고 생각하며 W사의 면접을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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