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4]의식과 인식의 지평

2019.01.04 23:57

최한철 조회 수:103

문득, 선과 악은 결국 본인이 인식하고 의식하는 지평이 얼마나 넓은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홍콩의 마완에 살 때 읽은 기사 중에, "똑똑할수록 불륜을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연구에 대한 글이 있었다. 똑똑하다는 정의를 연구에서는 학력으로 구분지었는데, 그것은 내 생각에 조금 편협한 정의고, 이를 좀더 적합하게 표현한다면 "의식의 지평이 넓을수록 불륜을 저지를 확률이 낮다"고 표현하고 싶다. 의식의 지평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두 축에서 이를 정의하고 싶다. 첫번째 축은 시간이며, 두번째 축은 시간이라는 변수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그 세계에 대한 인식의 넓이다. 공간축과는 조금 다르지만 편의상 공간축이라고 하자.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형성되는 종교에서 성인들은 이 두 가지 축에서의 인식과 의식의 지평이 지극히 넓다. 예수님을 예로 들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친구, 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자 하셨다. 그리고 그 인류의 개념에는 단순히 그 기원전 1세기라는 공간축의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축에서의 인류도 포함된다. 


왜 이런 인식과 의식의 지평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 다시 해당 연구로 돌아가보면, 그 연구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미래에 올 결과들을 많이 고려한다고 결론내린 걸로 기억하는데, 이는 시간축에서의 지평이 넓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공간축에서 상처받을 사람들에 대한 고려 또한 많을 것이다. 의식과 인식의 지평이 낮을수록 작은 집단에 대해서만 고려를 하며, 극단적으로 낮은 사람은 오로지 본인만 생각한다. 이는 사회학자 영의 내집단(in-group)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내집단은 애정과 충성심을 나누며 연대 의식을 공유하는 인간의 집단이다. 극히 소수지만 본인만이 내집단인 사람도 있고, 조금 더 나아가 가족만이 내집단인 사람이 있으며, 가장 일반적으로 가족, 친지, 친구까지를 내집단으로 삼는 사람이 다수다. 흔히 국가까지는 약한 내집단 개념이 확장되지만, 이는 타국가와 접점이 있을 때만 발동되는 약하디 약한 상대적인 내집단 개념일 경우가 많다. 그에 반면 성인들의 의식에서는 이 내집단 개념이 끝없이 확장되어 전체 인류에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이를 자아의 경계를 없애는 것으로 설명하셨으며, 심지어 동식물과 무생물까지 이 개념을 확장하셨다. '나'를 내려놓으라는 것은 결국 인식과 의식의 지평을 넓히라는 말과도 같다.


그럼 왜 인식과 의식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예수님은 사기꾼, 도둑, 살인자까지 사랑하셨다. 근데 내가 왜 그런 놈들까지 사랑해야하는가? 어? 아마도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아직 지평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와 관련해서 최근에 한 경험 한 가지가 있는데, 와이프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린이를 낳고 보니까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면 정말로 가슴이 많이 아파진다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리를 한 대 탁 얻어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난 그게 안타까운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언론과 정계에서는 유난 떤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경험은 당연히 인식과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이전까지 몰랐던 것들을 알고, 새로운 상황에 처해보고, 그러면서 부모가 되어봐야 경험해야하는 것들을 경험해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경험처럼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과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흔히 말하는 성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성숙으로는 도둑을 사랑하는 성인의 반열에는 들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배고파서 빵을 훔친 장발장같은 도둑에게는 동정심을 느끼지만, 욕심으로 은행을 턴 도둑에게는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배고픈 감정까지는 인식과 의식의 지평을 넓힐 수는 있지만 은행을 털고 싶은 욕심까지는 넓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성인은 그것을 세밀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선한 사람이 악한 경험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실로 어려운 일이며 수양없이 자연적으로 성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23살이었던 군시절 28살이었던 내 맞선임 A는 21살이었던 B상병에게 매일같이 갈굼을 당했다. 어떨 때는 따귀를 맞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항상 무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그렇게 있다가 B상병이 제풀에 씩씩거리며 다른데로 가고나면 나를 쳐다보면서 씨익 웃곤 했다. 어느 하루는 A일병이게 물었다. A일병님, 도대체 그걸 어떻게 참으시는 겁니까? 참는 걸 떠나, 어떻게 그렇게 여유 있으실 수 있습니까? 그때 대답했던 A일병의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B상병을 로봇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부터 이 모든 상황이 희극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즉, B는 그저 그렇게 화내고 갈구도록 프로그래밍된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로봇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는 의미다. 화가 날 리가 없다. 야구공을 발사하도록 설치된 기계에 야구공을 맞는들, 기계에게 화가 날 리가 없다. 엘레베이터가 고장나서 갇히더라도, 엘레베이터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에게는, 화가 날 수가 없다.


인간에게는 인간을 고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도 동물이다. 취하는 행동의 복잡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개나 침팬지와는 다른 대단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지만, 침팬지와 금붕어를 비교하면 침팬지가 대단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슬프면 울고, 재미있으면 웃는다. 게임이나 도박을 가져다 놓으면 중독되고, 남녀를 붙여 놓으면 욕정을 내고, 뺨을 때리면 화를 내는, 어찌보면 지극히 예측가능한 패턴 속에서 행동한다. 고차원적인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자각하고 로봇에서 인간이 된 것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런 패턴 속에 빠져 있는 로봇으로 보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보셨을 때는 그것이 바로 원죄였을 것이다. 그래서 죄를 사하는 것, 혹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우리를 로봇에서 사람으로 만들고자하는 노력에 다름아니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디펙 초프라의 책이었나, 죽음을 다룬 책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었던 시절이 있는데 그 책에서는 죽음을 '눈이 뜨이는 경험'으로 묘사한다. 갑자기 의식이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만약 죽음을 통해 의식과 인식의 지평이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가정을 한다면 죽음 끝에 오는 심판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과 괴로움일 수도 있다. 의식과 인식의 지평이 낮을 때는 멸시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괄시했던 외집단의 구성원이, 갑자기 내집단이 되어 인식 속으로 다가오는 순간인 것이다. 막장 드라마에서, 복수하려고 마음 먹고 죽인 대상이 알고 보면 아버지인 것을 알고 통곡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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